<B급 며느리>를 보고 왔다. 2월에 본 영화 리뷰를 거진 3월이 다 가고서야 쓴다. 결혼하고 처음 맞는 민족 고유의 명절을 앞두고 심심풀이로 보러 갔던건데 <B급 며느리>의 리뷰를 쓰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억하기로는 영화관의 주 관람객은 3,40대 정도의 여성들이었는데 그 중 남자 관객은 내 남편까지 한 두명 정도였던 듯. 왜 그런지는 영화 시작 후 머지 않아 알게 되었지만, 여튼 대놓고 쉽지 않은 주제의 다큐를 함께 봐준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영화의 주제는 '전형적인 고부갈등'이다. 아들을 끔찍히 생각하는 시어머니 조경숙은 당신의 며느리가 '기본적인 며느리 수칙'만이라도 따라주길 바란다. 며느리 수칙에는 나이가 어려도 시동생이면 도련님이라 호칭할 것, 명절 때는 응당 시가에 들러 음식을 나르고 과일을 깎을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며느리 김진영은 시어머니가 요구하는 것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도련님'이란 호칭은 꼭 몸종이 주인님을 높여부르는 말 같고, 우리집에서는 남편한테 일 안 시키는데 왜 시어머니는 나에게 일할 것을 저렇게나 당당하게 요구하나 싶다. 두 여자의 갈등이 극으로 달한 커피샵에서 시어머니는 "난 내 손자만 보면 된다"라며 분에 못이겨 자리를 떠나버리고 며느리는 당신이 하신 말 꼭 지키시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감독이자 아들이며 남편인 선호빈은 고래들 싸움에 자기 등이 터지는 듯 하다.  


'허핑턴포스트'처럼 자극적인 내용만 담은 예고편을 뒤로 하고 이 가족의 속얘기가 궁금했다. 어머니 조경숙은 틀어져버린 며느리와의 관계 때문에 아들도, 손주도 한번 만나기 어렵다. 직접 만나기 힘든 손주는 핸드폰으로 담아온 동영상에서 겨우 보는 처지다.
영상편집 아르바이트로 하루를 근근히 살아가는 아들이 안쓰러워 할머니가 되서도 아들에게 용돈을 주는, 시어머니 조경숙은 여느 어머니들과 닮은 모습이다. 아내 김진영은 어머님께 용돈을 받아 쓰는 남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내 김진영은 아이 등원부터 밥 차리기, 청소, 아이 목욕과 놀아주기 등을 가사와 육아를 도맡아 하고 있다. 그녀가 대입 후 사법고시 1차를 패스할 정도로 똑 부러지는 여자라는 부가 정보를 차치하고라도 전업주부로만 몇년 째 지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일 것이다. 시집을 다녀온 어느날, 김진영은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었는데!"하며 엉엉 울기도 한다.  


가정에서도, 영화에서도 듣기만 해도 짜증나는 이 문제에서 감독은 전적으로 3인칭의 위치에 있다. 영화에서 선호빈 감독이 "그만 좀 해라. 네가 좀 맞춰드리면 되잖아!"라는 대사가 모든 상황의 문제점을 설명한다. 영화 속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대부분 당신이 당신의 시가와 남편과 아들을 위해 요구되었던 일들이다. 당신도 한때는 힘들어했던 일이지만 '전통'과 '문화'라는 이유로 굴종 당할 수 밖에 없던 시어머니가 본인의 업을 며느리에게 인수인계하며 며느리에게 부리는 일종의 '텃세'인 것이다. 동시에 같은 '여자로서' 며느리와의 유대감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며느리라고 왜 시부모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겠는가. 비록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눈치껏 시부모님 눈 밖에 안 나도록 부단히 해왔을 것이다. 그러던 중 이제는 이 모든 게 싫어진거다. 황혼 이혼이 급증하는 요즘 시대에 이런 의식의 변화가 뭐 대수일까. 양쪽 모두가 이해되는 현 시점에서 고부갈등의 근본적인 시발점은 두 명의 여자가 한 명의 남자를 위해 밥상을 차리는 아주 단순한 사건에 있다. 



실제 가족에 대한 내용이고 민감한 주제기 때문에 관객인 나조차 이러한 개인 가정사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은데, 이 감독은 도대체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엄마와 아내 얼굴 다 팔아 가면서 내 놓은 고부갈등의 원인이 이시대 청년실업과 사회적 구조, 부모님 세대와의 단절 때문이라 말하려는 것은 너무나도 편협하고 자기 합리적인 현실 인식이다. 이런 마당에 "나는 이상한 여자와 결혼했다."나 "우리 집에 고래 두마리가 산다." 등의 지극히 3인칭 피해자 입장인 듯 만들어낸 캐치프레이즈라니 등짝을 한대 날려주고 싶은 기분이 든다. 물론 고부갈등 문제는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문제 뿐만 아니라 기존 사회적 구조 문제와 세대 차이에서 오는 사고 방식의 차이 등의 다양한 이유가 그 기저에 깔려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문제의 원인 규명은 커녕 감독의 가정사에 대한 한 시간 반 가량의 넋두리일 뿐이다. 

어쩌면 선호빈 감독은 시종일관 무기력하고 방관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남편이자 아들들의 모습을 표상한 것일 수 있겠다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하기엔 인터뷰 중 '시어머니와 아내 진영에게 자기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겠다'라는 감독의 기획 목표 소개가 기가 차다. 자신을 갈아넣어 만든 '에밀레종' 같은 다큐라고 영화를 소개한 감독에게 도대체 이 종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지는 알고 영화를 만들었냐고 묻고 싶다.


아래는 영화의 명대사;

"사실은 그 집에서 손발 다 움직일 수 있는 어른 넷이 모여있는데 나랑 어머니만 그걸 니가 했니 내가 했니 싸우고 있어야 돼. 우스운 일인거야." 

“며느리? 며느리는 우리 집 식구지. 우리 집에 와서 우리 아들하고 결혼했으니까 우리하고 가족 관계로 이루어진 거지. 
제일 첫 번째, 며느리가 할 일은 집안 대소사에 참석하는 거. 시아버지 생신. 1번은 시아버지야. 시어머니는 2번이야.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가 제일 일등이지.” 

“왜가 어딨어! 남자가 저기지. 그럼 너 조호빈이야? (조호빈으로 바꾸겠다는 감독에게) 바꾸지 마. 난 그런 거 원하지 않아.” 

“며느리는 손님이 아니야. 며느리는 최하야. 말단이야. 아주 낮은 자세로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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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가 개봉하자마자 남편과 보고 봤다. 영화 개봉을 기다려서 보는 편도 아니고 보통 기대하고 봐도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관을 나올 때 다행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주인공 일라이자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녀가 왜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욕실에서의 자위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녀는 미 항공우주센터의 청소원으로 그녀 주변에 대화(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를 나눌 만한 사람들이라고는 가난하고 늙은 화가 자일스와 동료 청소부 젤다 뿐이다. 


 


고아원 출신의 벙어리 일라이자, 변변찮은 수입도 없는 동성애자 자일스, '흑인 여자'라는 그 자체로 차별을 당해야 하는 흑인 젤다. 어쩌면 <셰이프 오브 워터>의 인물들은 1960년대 미국에서 철저히, 아주 당연히 ‘루저’인 사람들이다. 이런 ‘당연함’의 특이점을 기예르모 감독은 관객들에게 지속적으로 상기시킨다. 흑인은 형편없는 파이를 파는 프랜차이즈 점에서도 앉아서 식사할 수 없는 장면, 남자라면 응당 여자 하나는 만족 시킬 손가락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대사를 통해 말이다. 영화 속 악역으로 그려지는 스트릭랜드의 잘린 손가락이 썩어 냄새가 진동하고 마침내 검게 변해가는 모습은 마치 당시의 일그러진 시대상을 지적하는 듯 하다. 각종 멸시와 차별이 만연한 환경에서 소외받는 자들이 모여 발휘하는 유대감은 눈물이 날 정도로 과분한 행복을 선사하지는 못하지만, 쉽게 무너트릴 수 없는 단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말을 하지 못하는 인간 일라이자가 진정으로 교감할 수 있던 유일한 존재가 괴생명체라는 점은 어쩐지 서글프면서도 환상적인 일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위로 받으며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사랑의 진정한 형태는 어떤 색과 어떤 모양을 지녔을까 영화는 끊임 없이 묻는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괴생물체와 사랑에 빠진 한 여자의 몽환적인 로맨틱 스토리라고 설명하기보다, 민낯의 나체라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사랑의 완성, 그로부터 오는 위로를 보여주는 영화라 평하고 싶다. 종로3가 피카디리에서 영화를 보고 나와 가볍게 술 한잔 할 겸 펍을 들렸다. 펍에는 남자 손님 밖에 없어 의아했는데 아! 이 골목길이 그 유명한 '그' 골목길이더라. 마침 이런 영화를 본 날! 보수적이고 꼰대스러운 내가 잠시나마 사랑의 다양성을 무한히 관대해질 수 있던 하루였다. 

 

뱀다리1. 영화 제목에서 '사랑의 모양'이라 덧붙인 건 좀 구린 듯.  
뱀다리2. 굳이 <판의 미로>를 어른들을 위한 비극적 환상 동화라 칭한다면, 이 영화는 어른들을 위한 로맨스 환상 동화 정도 되겠다. 
뱀다리3. 얼마전에 주성치의 <미인어>를 봤었는데 인어 퀄리티 차리 너무 대조되버리는 거. 기예르모의 크리처들 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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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imstreasure.tistory.com BlogIcon Zoom-in 2018.02.25 23:17 신고

    최근 개봉한 영화네요.
    어른들을 위한 환상동화 같은 영화라는 평이 영화를 궁금하게 하네요.

지난 주말 남편과 <코코>를 봤다. 일 년에 영화관 가서 영화 보는 횟수가 손에 꼽는데 2018년의 목표 중 하나인 '문화비 지출을 늘리자' 캠페인 실천과 이동진 평론가의 한줄평에 힘입어 바로 예매했다. 

이 쪼꼬맹이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미겔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미겔은 멕시코 전설의 가수 델라 크루즈를 동경하며 세계적인 기타 뮤지션이 되기를 꿈꾸는 평범한 소년이다. 음악을 하겠다며 돌연 가족을 등지고 떠나버린 고조 할아버지 때문에 미겔의 가문은 대대로 음악을 금지했고, 가족들은 미겔이 그들과 같이 신발 공장의 가업을 잇기를 원한다. 어느 날 밤,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미겔은 그만 '죽은자들의 세계'로 가게 되고, 이승으로 다시 되돌아오려는 미겔의 여정이 바로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여기 최소 하나무라 ㅇㅈ?

   영화 속에서 픽사가 그리는 저승은 어둡고 음산한 기존의 '저승' 컨셉에서 탈피해 흡사 라스베이거스를 연상케할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답다. 이런 다채로운 색감으로 저승을 그린 건 아마도 죽음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멕시코 사람들의 시선을 반영한 듯 하다. 사진이 있어야만 죽어서도 살아있을 수 있다는 컨셉이나, 영혼의 인도자 '알레브리헤'의 존재 역시 타코 외에는 '멕알못'인 나로서는 멕시코 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소개받은 것 같아 흥미로웠음. 픽사 특유의 과하지 않은 위트도 훌륭. 

미겔 외에 누군지 1도 기억 안남 

아쉬운 점은 음악으로 대표되는 '꿈'과 가업 잇기라는 '현실'과의 갈등 대립구조가 딱히 대립되지 않아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어디로 얘기가 흘러가는건가 하고 영화 후반부까지 쓸려 왔는데 '가족의 비밀'이라는 감동치트키를 얹칠 때쯤 되니 좀 맥이 빠져버렸달까. 중후반쯤에는 애들이 보기에는 지루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아이들 보여주러갔다가 어른이 울고 나온다'는 캐치프레이즈 만드려고 작정을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  

마마 코코 ㅠㅠ

   허나 여타 아쉬운 부분을 차치하고 <코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OST인 "Remember Me"에 있다. 왜, 멜로디도 예쁘고 들으면 너무 행복하지만 그래서 더 눈물이 날 것 같게 하는, 말로는 서술하기 어려운 그런 감정을 자아 내는 노래. (개인적으로는 '옥수사진관' 노래를 들을 때 그렇다.) 내가 떠나야 해도 나를 기억해달라는 가사의 이 노래를 미겔과 마마 코코가 부르는 장면은 줄곧 팔짱 끼고 영상미, 시나리오 운운하며 고고한 평가를 내리던 그 어떤 사람(나야 나 나야 나)이라도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게 만든다. 

<코코>가 죽음을 소재로 함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희망적인 에너지를 주는 이유는 아마도 영화가 OST와 그 유사성을 갖고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영문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애들 보여 주러 갔다가 어른들이 울고 나오는 이유도 죽음 앞에서는 어쩌면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더 무서워해서이기도 하고. <코코>는 그런 무서움에 떠는 어른들에게 위안을 주는 영화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혹은 나를 기억해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로부터 오는 위안과 미처 챙겨주지 못했던 것에서 오는 미안함. '지금부터라도 더 잘해줘야지' 다짐할 사람이 지금 내 옆에 있다는 것에 오는 안도감. 아마도 이런 복잡한 감정들이 섞여서 영문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 거 아닐까.




초반 20분 정도 나오는 <겨울왕국>을 볼 때는 <시계태엽 오렌지>의 알렉스가 된 기분이었음. 걍 강제로 닥치고 눈뜨고 봐야됨. 오빠는 잘못 예매했나 그 어두운 곳에서 핸드폰으로 몇번을 확인했다. 영화관 말고 2년 후 어린이날때 채널 CGV에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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