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넷플릭스 월정액 이용 중이라 밥 먹는 동안 적적해 틀어 본 드라마였다. '흑인 셋에 힙합 얘기라, 무난하겠네'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봤는데, 이야! 이 드라마 진짜 개 쩐다. 나만 알고 싶은 XX 시리즈가 유행이라지만 왜 좋은 걸 나만 알아? 심보 보소.

두둥 마약 캠페인 포스터에 나올 법한 이 시니컬한 표정의 3인이 본 드라마의 주인공들이시다

    개인적으로 유명한 배우나 아이돌이 주인공인 드라마보다 캐릭터가 살아 있는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그런 면에서 <아틀란타>는 캐릭터 덕에 배우들에게 눈이 가는 아주 적절한 드라마라 할 수 있다. 프린스턴대 자퇴 후 고향인 애틀랜타로 돌아 와 어영부영 지내는 주인공 '언'은 요즘 애틀랜타 힙합씬의 떠오르는 랩퍼라는 사촌형 '페이퍼 보이Paper Boi'를 찾아간다. 먹고 살 방도를 틀 겸, '언'은 페이퍼 보이를 '아틀란타 힙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꽤 거창해보이는 줄거리지만 실상 내용은 짠내 그 자체. 자전적인 내용을 기반으로 작가가 각본을 써서 그런지 담고 있는 내용이 솔직하고 사소하다. 우리네 삶도 가까이 보면 느와르가 아닌 삶이 없어서인지 세 주인공을 보는 내내 귀엽고 짠했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부모 없이 개고생하면서 살아도 명품 가방은 잘만 들고 다니는 거 보면 좀 거부감이 드는데 말이지.



저 뒤에 소파에서 일광욕하면서 떨 빤다

    작가가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도 참 따뜻하다. 왜, 술자리에서 거나하게 취한 친구를 보고 "아휴 저 병신새끼" 말은 해도 택시 태워서 '기사님 잘 부탁 드릴게요'하고 집에 보내는 그런 느낌과 비슷하달까. 항상 무덤덤한 표정의 '언', '떠어-그 라이프'를 지향하지만 안전을 생각해 집으로 음식 테이크아웃 해먹는 랩퍼 '페이퍼 보이', 선지자인지 그냥 바보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다리우스' 이 세 인물들은 가히 박상면-정웅인-윤다훈의 '세친구'급 트리니티 포스 케미를 보여준다. 참고로 주인공 '언' 역을 분한 도널드 글로버가 이 드라마의 작가이자 연출자고 감독이기도 하다. 게다가 'Childish Gambino'라는 예명으로 뮤지션으로도 활동하는데 최근 'Get out' OST로 쓰인 'Redbone'으로 그래미 상도 받으셨다. 실로 뻨킹 지니어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등신, 다리우스. 멍하고 귀여운 이미지로는 모스뎁이 제일이었는데 <아틀란타>보고 키스 스탠필드로 바뀌었다. 

    또 하나 <아틀란타>의 백미는 드라마의 OST인데 감독이 뮤지션이여서 그런가 한곡 한곡이 그냥 킬링 트랙이다. (도널드 글로버와 히로 무라이Hiro Murai가 함께 공동 감독을 맡았는데 Childish Gambino 뮤직비디오의 연출가라고 함) 여자 싸비+사랑X돈 운운 <쇼미> 김치 힙합이 지겨워 한동안 멀리 했던 힙합이 이렇게 다시 좋아지다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덧붙여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엔딩곡 선정 센스가 매우 탁월해 에피소드 한 편 끝나고 엔딩곡이 흐를 때면 나름의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Redbone'이야말로 이 드라마 테마곡으로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여러 좋은 노래들도 소개받는다는 생각으로 그저 감사. (네, 그리고 OST는 바로 구매예정이고요) 


               

         

 
    모든 에피소드가 훌륭하지만 맛보기로 볼 만한 두 편을 소개하자면 "B.A.N." ('힙합방송국')과 "The Streisand Effect" ('스트라이샌드 효과') 요 두 편을 꼽겠다. 두 에피소드 모두 우리 백의민족에게는 생경한 흑인 문화가 짙게 묻어나는 에피소드로, 미국에서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자유의 나라라는 미국에서도 아직도 흑인에게는 암묵적인 차별이 존재한다는 게 보는 내내 신기했다. 열 받았는다고 총 뽑아든다는 것도 신기하고.... "N word"를 쓸 수 있는 동질감이 궁금하니 다음 생에는 기회가 된다면 꼭 흑인으로 태어나고 싶다.. 

어쨌거나 시즌1을 이렇게 빨리 해치울 줄 알았으면 아껴볼 걸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다가오는 3월에 시즌2가 시작된다고 해서 매우 기대 중이다. 고민 중이던 넷플릭스는 당분간 해지하지 않는 걸로!


(주의) 참고로 이 사람은 마성의 매력이 있습니다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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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남편과 <코코>를 보고 왔다.

일 년에 영화관 가서 영화 보는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지만 2018년의 목표 중 하나인 '문화비 지출을 늘리자' 캠페인 실천과 이동진 평론가의 한줄평에 힘입어 바로 예매했다. 

이 쪼꼬맹이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미겔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미겔은 멕시코 전설의 가수 델라 크루즈를 동경하며 세계적인 기타 뮤지션이 되기를 꿈꾸는 평범한 소년이다. 음악을 하겠다며 돌연 가족을 등지고 떠나버린 고조 할아버지 때문에 미겔의 가문은 대대로 음악을 금지했고, 가족들은 미겔이 그들과 같이 신발 공장의 가업을 잇기를 원한다. 어느 날 밤,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미겔은 그만 '죽은자들의 세계'로 가게 되고, 이승으로 다시 되돌아오려는 미겔의 여정이 바로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여기 최소 하나무라 ㅇㅈ?

   영화 속에서 픽사가 그리는 저승은 어둡고 음산한 기존의 '저승' 컨셉에서 탈피해 흡사 라스베이거스를 연상케할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답다. 이런 다채로운 색감으로 저승을 그린 건 아마도 죽음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멕시코 사람들의 시선을 반영한 듯 하다. 사진이 있어야만 죽어서도 살아있을 수 있다는 컨셉이나, 영혼의 인도자 '알레브리헤'의 존재 역시 타코 외에는 '멕알못'인 나로서는 멕시코 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소개받은 것 같아 흥미로웠음. 픽사 특유의 과하지 않은 위트도 훌륭. 

미겔 외에 누군지 1도 기억 안남 

  아쉬운 부분도 물론 몇 가지 있다. 음악으로 대표되는 '꿈'과 가업 잇기라는 '현실'과의 갈등 대립구조가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어디로 얘기가 흘러가는건가 하고 영화 후반부까지 쓸려 왔는데 '가족의 비밀'이라는 감동치트키를 얹칠 때쯤 되니 좀 맥이 빠져버렸달까. 중후반쯤에는 애들이 보기에는 지루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아이들 보여주러갔다가 어른이 울고 나온다'는 캐치프레이즈 만드려고 작정을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  

마마 코코 ㅠㅠ

   허나 여타 아쉬운 부분을 차치하고 <코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OST인 "Remember Me"에 있다. 왜, 멜로디도 예쁘고 들으면 너무 행복하지만 그래서 더 눈물이 날 것 같게 하는, 말로는 서술하기 어려운 그런 감정을 자아 내는 노래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옥수사진관' 노래를 들을 때 그렇다.) 내가 떠나야 해도 나를 기억해달라는 가사의 이 노래를 미겔과 마마 코코가 부르는 장면은 줄곧 팔짱 끼고 영상미, 시나리오 운운하며 고고한 평가를 내리던 그 어떤 사람(나야 나 나야 나)이라도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게 만든다. 

   <코코>가 죽음을 소재로 함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희망적인 에너지를 주는 이유는 아마도 영화가 OST와 그 유사성을 갖고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영문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애들 보여 주러 갔다가 어른들이 울고 나오는 이유도 죽음 앞에서는 어쩌면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더 무서워해서이기도 하고. <코코>는 그런 무서움에 떠는 어른들에게 위안을 주는 영화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혹은 나를 기억해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로부터 오는 위안감과 미처 챙겨주지 못했던 것에서 오는 미안함. '지금부터라도 더 잘해줘야지' 다짐할 사람이 지금 내 옆에 있다는 것에 오는 안도감. 아마도 이런 복잡한 감정들이 섞여서 영문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 거 아닐까?



덧.

초반 20분 정도 나오는 <겨울왕국>을 볼 때는 <시계태엽 오렌지>의 알렉스가 된 기분이었음. 걍 강제로 닥치고 눈뜨고 봐야 됨. 오빠는 잘못 예매했나 그 어두운 곳에서 핸드폰으로 몇번을 확인했다. 영화관 말고 2년 후 어린이날때 채널 CGV에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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