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들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하늘우체국

            

                                                       김수우

       

   시립묘지 납골당 입구 하늘우체국은 열두 달, 가을이다

오늘도 헐렁한 쉐터를 입은 가을이 소인을 찍는 중,

우표 없는 편지들이 시시로 단풍든

다 몰래 지나는 바람에도 말의 잎새더미에서 풍기는 젖은 지푸락 냄새,

말의 송아리, 슴벅이며 돌아본다

 

  하늘우체국에서 가장 많은 잎새말은 '사랑해요'이다 

'미안해요'도 가랑잎 져 걸음마다 밟힌다

'보고 싶어요'  '또 올께요'도 넘쳐흘러 하늘이 자꾸 넓어진다

산자에게나 망자에게나 전할 안부는 언제나, 같다, 

언제나, 물기가 돈다

 

  떠난 후에야 말은 보석이 되는가 살아 생전 마음껏 쓰지 못한 말들,

살아 퍼주지 못한 말들,  이제야 물들며 사람들 몸 속으로 번진다 

가슴 흔들릴 때마다 영롱해진다 바람우표 햇살우표를 달고

허공 속으로 떠내려가는 잎새말 하나,

'내 맘 알지요',반짝인다





상행

                                     김광규


 가을 연기 자욱한 저녁 들판으로

상행 열차를 타고 평택을 지나갈 때

흔들리는 차창에서 너는

문득 낯선 얼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너의 모습이라고 생각지 말아 다오.

오징어를 씹으며 화투판을 벌이는

낯익은 얼굴들이 네 곁에 있지 않느냐.

황혼 속에 고함치는 원색의 지붕들과

잠자리처럼 파들거리는 TV안테나들

흥미 있는 주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다오.

농약으로 질식한 풀벌레의 울음 같은

심야 방송이 잠든 뒤의 전파 소리 같은

듣기 힘든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 다오.

확성기마다 울려 나오는 힘찬 노래와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는 얼마나 경쾌하냐.

예부터 인생은 여행에 비유되었으니

맥주나 콜라를 마시며

즐거운 여행을 해 다오.

되도록 생각을 하지 말아 다오.

놀라울 때는 다만 '아!' 라고 말해 다오.

보다 긴 말을 하고 싶으면 침묵해 다오.

침묵이 어색할 때는

오랫동안 가문 날씨에 관하여

아르헨티나의 축구 경기에 관하여

성장하는 GNP와 증권 시세에 관하여

이야기해 다오.

너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시간은 빠르기도 하다.언어영역 모의고사 (특히 비문학)많이 풀어야되는데.. 계속 문학만, 그것도 시쪽만 풀고 있는중.

또 이럴 기회 없을 것 같으니까. 좋아하는 시들 몇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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